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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4.03.13 성령께서 주신 은사를 잘 발전시키길. / 고전 12:1-11.

묵상자료 8336(2024. 3. 13. 수요일).

시편 시 51:4-6.

찬송 371.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흔히 예술가라하면 보통 사람과는 좀 다른 그러한 재능을 갖고 태어난다, 생각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예술가들도 원하는 모든 재능을 가지지는 못했지요. 화가라고 해서 회화의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재능을 얻은 것도 아니고, 작가라고 해서 모든 문장에 너른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헌데 춘원 이광수의 문장은 당대를 호령할 만큼 뛰어난 것이었지요. 당시 매일 신보에 연재 되었던 소설 무정은 시대를 앞서간 문학작품으로 지금까지도 평가 받고 있을 정도입니다. 춘원은 욕심도 참 많았지요. 산문 뿐 아니라 시에 있어서도 뛰어난 작가이기를 그는 언제나 원했습니다.

    “옛 친구 대한 마음 아는 이나 올 것이/ 범연한 듯해도 대해 보면 정이 깊어/ 할 말도 없으면서도 날 가는 줄 몰라라/ 옛 친구 놓고 보면 생각도 끝없어라/ 어린 재 젊은 재 어느 덧에 다 보내고/ 오늘에 그대와 나와 중년이라 하나뇨

    이제는 백년 가까이 된 글입니다만, 지금 읽어도 손색없는 서정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춘원 이광수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이었던 성격으로 전합니다. 덕분에 사회적인 계층이나 정치적인 성향을 막론하고, 그의 주변엔 벗들이 많았다고 하네요. 그래도 정치적인 성향은 가까운 사람들의 반목을 이끌어내곤 했었습니다. 오래 두고 사귀고 싶어 하던 벗들을, 그래서 춘원은 많이 놓아주어야 했지요. 한번 선택한 것은 뒤돌아보지 않는 거침없는 성격이었습니다만, 그 모습을 통해 춘원 역시도 많은 것을 깨달았겠지요. 그래서 이 글을 통해 중년에 덧없음을 담아낸 것입니다. 이광수 시 김동환 시 <옛 친구> 소개해 드렸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9313일 방송>

 

2. “성령이 주시는 은총의 선물(1-11)”을 읽었습니다. 삼위일체 교리는 여전히 논쟁 중에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삼위일체 교리를 부정하는 교파들이 있다는 것이 그 반증입니다. 그러나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 그리고 성령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삼위일체 교리만큼 적절한 이론은 없으니 그대로 따르는 것이 현명할 것입니다. 참고로 삼위일체 교리는 325년 니케야 공의회를 소집한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서 확정되었는데, 여기에는 신학자 아타나시우스와 또 다른 신학자 아리우스와의 논쟁을 중재하기 위한 회의로 결국 313:5로 아타나시우스의 삼위일체론이 채택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격은 성부, 성자, 성령 세 가지(persona, προσωπον)이며, 서로 구별되면서도 본질은 같다(ὁμοούσιος)는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말합니다. 그리고 삼위일체의 주문장인 성부 성자 성령이 성경에 등장하는 유일한 문장은 마태복음 28:19-20이 전부입니다. 물론 성경은 도처에서 성부 성자 성령의 독립적으로 사용하고 있으나, 이를 맥락적으로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삼위일체 교리 성립할 수 있다 하겠습니다. 곧 성자=하나님, 성령=하나님, 성부성자성령이라고 말입니다. 신학이나 교리는 성경을 올바르게 해석하는 도구이기 때문에 충분한 성경적 근거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성령께서 하시는 역할에 대한 내용입니다. 첫째는 예수를 저주하지 않고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선물입니다(고전 12:3). 둘째는 주님을 섬기는 다양한 직책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목적은 공동의 이익을 위해서인데, 지혜의 말씀이나 지식의 말씀을 받기도하고, 어떤 이는 믿음을 또 다른 이는 병 고치는 능력 등입니다. 이는 성령께서 당신의 뜻대로 주시는 은사이기 때문에, 남의 은사를 부러워말고 잘 감당할 수 있기 위해서 무엇을 할까 고민하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성령의 은사를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내용이 12-31절의 말씀인데,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라는 표제어로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눈과 다른 지체와의 관련성에 대한 말씀입니다. 눈의 기능과 역할이 중요하지만 다른 지체들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가장 약한 지체가 더욱 요긴하다고 말입니다(22). 그러니까 우리들 생각으로는 가장 볼품없고 무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때에 따라서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느 분은 몸의 지체 중 입이 가장 호강을 하는 것으로 알았는데, 지체들 사이에서의 대화를 들어보니 그게 아니더라는 얘기였습니다. 눈과 손과 발은 피곤한 일생을 살고 있었는데, 온전히 입을 위해서 일하고 있다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불평을 하니까 입이 대답하기를 자신은 쉬지 않고 씹는 일을 하느라 잠도 편히 자지 못하고 중노동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잘 씹은 것들을 온 몸으로 배달하고 남은 것은 하나도 없다 대답한 것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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