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337(2024. 3. 14. 목요일).

시편 시 51:7-9.

찬송 405.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사람들이 시를 좋아하지는 않겠지요. 누군가는 글이라는 이유만으로 시를 싫어할 수 있고, 또 누군가는 한가한 이들이나 하는 소일/消日이라고 비하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래도 많은 분들이 시를 좋아하십니다. 그것이 희열 때문은 아닐까 싶은데요. 말로는 형언하기 힘든 마음 속 어떤 감정 하나를 시를 읽는 것으로 깨닫게 되는 바로 그 순간의 희열 때문 말입니다. 요즘 같은 날 이 시를 자주 읽게 되는 것도 같은 이유지요.

    “우리 살아가는 일 속에 파도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이 어디 한두 번이랴/ 그런 날에는 조용히 닻을 내리고 오늘 일을 잠시라고 낮은 곳에 묻어두어야 한다/ 우리 살아가는 일 또한 그 같아서/ 파도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은 높은 파도를 타지 않고/ 낮게 낮게 밀물져야 한다/ 사랑하는 이여 상처받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 추운 겨울 다 지나고 꽃필 차례가 바로 그대 앞에 있다

    칠레의 시인 파불로 네루다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일이 시를 정의하는 것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어떤 시들은 다른 말을 덧붙이기 힘들만큼, 시 한편으로 많은 말들을 생략하게 하지요. 김 종혜 시인의 시 역시 그렇지 않을까 합니다. 모두가 힘들다고 말하는 요즘 두 계절이 맞닿아 있는 것 같은 이 계절에 더 깊이 와 닿는 글이지요. 김 종혜 시인은 살아있는 시에 혼을 담아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 시인의 몫이다 말하곤 했습니다. 그 말의 뜻을 시를 읽는 것으로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 종혜시 이 한삼곡 <그대 앞에 봄이 있다> 소개해 드렸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9314일 방송>

 

2. “그리스도의 몸과 지체(12-26)”을 읽었습니다. 신앙인이건 아니건 간에 자신의 운명에 관한 궁금증이 항상 내재하고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는 운명론/運命論과 결정론/決定論이 뒷받침을 하는데, 우선 이 개념을 언급하려고 합니다. 먼저 운명론이란 모든 과거, 현재, 미래의 사건들은 이미 하나님이나 다른 전능한 능력에 의해 예정되었으므로, ‘일어날 일은 일어날 것이라는 신념으로, 종교적으로 이 견해는 예정설이라고 불립니다. 이 견해는 우리의 영혼이 천국에 갈지 지옥에 갈지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결정되며, 우리의 선택과는 별개라고 믿습니다.” 이와 비슷한 개념으로 결정론이 있는데, 결정론이란 모든 사건에는 원인이 있고, 우주 만물은 절대적으로 인과법에 의존하고, 지배된다는 견해입니다. 결정론자들은 인간의 행동을 포함한 모든 사건을 이미 결정된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결정론은 보통 자유의지와 공존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므로 운명론이나 결정론의 한 가지 공통점은 인간의 의지나 노력으로 자신의 미래를 바꾸거나 개선하는 데는 무력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 중에는 자신이 타고난 성별에 불만을 갖고 바꾸려는 시도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트랜스전더가 그렇고, 성 염색체를 인위적으로 조합하는 것 등이 그렇습니다. 분명한 것은 앞으로 이런 작업은 계속 진행될 것입니다. 그러나 불만은 끝내 해소되지 않을 것이며, 헛된 욕망임을 깨달을 것입니다.

    사도는 그리스도의 몸과 지체라는 주제로, 인간의 역할에 대해서 보다 구체적인 이해를 기대하는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들로 다양성을 가지고 있음을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구성하는 지체들을 흔히 백체/百體라고 불렀습니다. 백가지의 다양한 역할들을 맡아 일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이 자신의 역할을 하찮게 여기는 경우가 많았다는 말입니다. 이렇듯 이 지체들에 대해서 경중/輕重을 따지는 일들이 흔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상처를 입거나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살아오면서 우리가 경험한 바로는 아무리 하찮은 지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고장이 나거나 제 구실을 하지 못할 때, 얼마나 많은 고통과 아픔이 있는지 모르겠더라는 말입니다. 가령 발가락 하나가 상처를 입거나 잇몸이 부어서 아플 때는 잠을 이루지 못하게 되던 경험 말입니다. 평소에는 주목받지 않는 지체일지라도, 일단 고장이 나거나 말썽이 생기면 온 몸이 고통을 함께 짊어지는 연대성을 나타내곤 했던 기억들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와 같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제 구실을 못하게 되는 일은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엄청난 고통과 아픔을 주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몸을 이루는 지체는 그 어느 것 하나도 소중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비록 주목받지 못하는 우리의 역할이라 할지라도 매우 소중하고 값진 것임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또 자부심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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