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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4.03.23 이원론에서 일원론으로. / 고후 4:16-18. 1

묵상자료 8346(2024. 3. 23. 토요일).

시편 시 53:4-6.

찬송 447.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람의 마음 씀씀이는 애써 감추려고 해도, 뜻하지 않은 곳에서 불쑥불쑥 들어나곤 합니다. 음악 하는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이지요. 곡을 표현해 내는 성악가의 목소리나, 작곡가들이 만들어 내는 음의 배열, 그리고 시인이 선택하는 단어들을 통해서, 우리는 막연하게나마 그들의 마음을 짐작하게 됩니다. 이런 목소리를 가진 사람은 나쁜 사람은 아닐 거야. 이렇게 고운 곡을 쓰는 사람은 분명 착한 사람일거야. 물론 그 짐작이 다 사실과 같지만은 않겠지만 말입니다. 작곡가 신귀복의 곡은 <얼굴> 같은 대표곡이 그렇듯 참 온화하고 유합니다. 크게 욕심을 내지 않고 기본이 되는 것들을 간과하는 법이 없지요. 가장 알맞은 상태로 정도를 벗어나지 않는 음악 어법, 그의 음악을 듣다보면 작곡가는 그의 음악과도 같은 그런 성품을 지니지 않았을까 짐작해 보게도 됩니다.

    “우아한 모습 향기롭고 아름다운 내 연인이여/ 아침햇살 은은한 뜰 악에서 그댈 느끼네/ 가슴 가득한 그리움 애달픈 내 사랑/ 잔잔한 그 빛에 스며들고 싶어라/ 끝없는 사랑의 향기 차마 못 다한 애절한 노래/ 그 가슴에 기대어 심호흡하고 싶어라// 우아한 향기 친숙하고 향기로운 내 사랑이여/ 오랜 기다림 짧은 만남/ 뜰 악에서 그대를 느끼네/ 가슴 가득한 그리움 한줄기 환희/ 은은한 그 빛에 스며들고 싶어라/ 끝없이 펼치는 혼 차마 못 다한 사랑의 노래/ 그 가슴에 기대어 심호흡하고 싶어라

    산수유, 목련, 겹 벚꽃, 여의도 공원에도 봄꽃들의 수식이 한참입니다. 목련의 모습은 단아하다는 말 외에 어떤 수식어도 붙이기 힘들지요. 목련이 지니고 있는 정갈한 이미지를  시인과 작곡가는 담담하게 우리 가곡으로 완성을 했습니다. 왠지 학창시절이나 중고등학교의 교정, 단발머리 밑으로 흰 목이 들어난 앳된 여고생의 뒷모습이, 노래와 더불어 떠오르기도 하지요. 작곡가 신귀복의 곡들은 묘하게도 추억을 회상하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작곡가 스스로도 그것이 가장 행복한 일이라 말했던 처럼 말입니다. 유 영애 시 신 귀복 곡 <목련> 소개해 드렸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9325일 방송>

 

2. “믿음의 생활(16-18)”을 읽었습니다. 사고방식이라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제게는 다양한 이웃들이 있습니다. 지연으로 맺어진 분들도 있고, 학연으로 맺어진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신앙으로 맺어진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관계로 알게 되었든 간에 생각의 틀이 유연한 분들이 있는가 하면, 그 생각의 틀이 굳어버린 분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몇 마디 얘기를 나누다 보면 어떤 유형의 생각을 하는지를 알아낼 수가 있습니다. 앞으로 두 주 후에는 총선 투표일이 되는데, 그래서인지 마치 어느 후보의 선거운동원인 양 입에 거품을 물고 자신이 좋아하는 후보를 지지하는가 하면, 그 반대인 후보를 비난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런 분들이 있어서 정치에서 손을 떼지 못하는 분들이 많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헬라 철학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원론적 사고방식의 전형을 보는 듯 했습니다. “외적인 인간과 내적인 인간이라든가, “지금 잠시와 영원이라든가, “보이는 것은 잠시 뿐이지만 과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라든지 하는 내용이 그렇습니다. 일반적으로 성경은 일원론적 사고방식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사랑과 미움이라고 하지 않고, 사랑과 성숙하지 않은 사랑이라든가, 선과 악이 아니라, 선과 모자란 선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대립적인 두 개가 아니라, 좋은 것과 조금 덜 좋은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원론과 헬라식인 이원론은 엄청난 차이를 가진다는 것입니다 이원론은 아무리 노력해도 서로 조화는커녕 곁에도 다가설 수 없는 것이지만, 일원론은 조금만 배려하면 합칠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인간의 의지나 노력으로 산다는 말이 아니라, 낡아지기 쉬운 인간이지만(외적으로 보면), 나날이 새로워질 수 있는 희망찬 내적인간이 있다는 뜻입니다. 지금 잠시 동안은 가벼운 고난의 멍에를 짊어지고 살아가겠지만, 조금 후에는 한량없이 크고 영원한 영광을 누릴 수 있다고 말입니다. 지금은 우리 육신의 눈으로 보이는 것들은 낙심하게 하고 슬퍼하게 할 것들이지만, 영의 눈으로 조금만 더 살피면 영원한 것들이 가슴에 스며들고 있다고 말입니다. 그것은 낡음과 새로움은 정반대의 개념이 아니라, 조금 부족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잠시 잠깐은 고난과 아픔이 있지만, 그것들은 성숙한 삶으로 익어가는 생채기에 불과하다고 말입니다. 온 세상이 잠든 죽음같이 캄캄한 새벽을 꼿꼿한 자세로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연신 비비며 깨어 있어야 하는 것은 잠시뿐인 젊음의 한 때를 영원에 잇대려는 일생일대의 도박심리가 남아 있어서라고 말입니다. 파스칼은 믿음은 인간이 도전할 단 하나의 도박이라고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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