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500호.
시편 시 42:1-3.
찬송 132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원시인들은 어두운 동굴 속에서도 아름다운 벽화를 그렸습니다, 유난히 길고 음산한 겨울로 유명한 독일에서 많은 훌륭한 음악이 만들어졌고요.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은 비어 있는 공간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려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시간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다.” 라고요. 그렇게 보면 우리의 삶도 어떤 공간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느냐에 따라 참 많이 달라질 수 있겠다, 생각이 드는데요. 지금 여러분은 어떤 공간에서 어떤 시간을 보내고 계십니까?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07년 10월 19일 방송>
2. 대림절 첫째 주일의 복음서 눅 19:28-40을 본문으로 “나귀 새끼를 타신 예수님”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성탄절을 앞두고 나귀새끼를 타신 메시야를 묵상합니다만, 뭔가 한쪽 가슴이 텅 빈 것 같고 시린 것을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노래로는 나귀새끼 운운하지만, 마음으로는 준마를 타신 주님을 상상하는 때문입니다. 썰렁한 마구간을 외치면서도 실상은 따뜻하고 흥겨운 크리스마스 파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를 제대로 지킬 수는 없을까요?
나귀새끼를 타신 예수님은 메시아의 상징성을 암시하고 있습니다(28-36절).
나귀를 보신 분들이라면 나귀의 왜소하고 불결하며 초라함을 떠올릴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제게 베데스다 못을 알려준 소년이 타고 있던 나귀와, 중국 소주의 한 공원에서 여행객을 태워주던 작은 마차를 끌던 나귀가 떠올랐습니다. 두 나귀 모두 눈에는 눈곱이 잔뜩 끼어있고, 피곤에 지친 모습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굳이 나귀새끼를 타신 것은 세상 사람들로 나귀에게 주목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잘 씻기고 빗질한 기름기 번지르르한 준마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외면하기에 딱 알맞은 나귀새끼를 타셨으니 말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메시아로 오시는 길에 가장 걸림돌이 되는 사람들이란 가난하고 병든 연약한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이 진심으로 기뻐하고 환영해 줄 메시아는 나귀새끼를 타시는 분이어야 했다고 말입니다. 링컨 대통령이 했다는 “하나님은 평범한 사람들을 훨씬 더 사랑하신다.”는 말의 의미입니다.
나귀새끼를 타신 주님을 그들은 찬양으로 맞아주었습니다(37-38절).
천만 다행스럽게도 예루살렘의 소시민들은 나귀를 타신 메시아를 환영해 주었습니다. 만에 하나 나귀새끼까지 타시면서 세상에 오셨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이 예수님을 환영하지 않았더라면 이 무슨 낭패입니까?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임금이여, 찬미 받으소서. 하늘에는 평화, 하나님께는 영광.”이라고 노래 불렀습니다. 제가 1970년대 한국 기독교회의 이상한 현상에 대해서 몇 차례 언급한 일이 있습니다. 한국 교회는 예수님을 맞고 싶지 않았다고 말입니다. 배금사상과 출세주의에 깊이 빠져있는 한국교회는 예수님을 알아보지도,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윤리의 이중성, 성적 타락, 그리고 이웃 사랑 없는 성장제일주의의 비호감을 눈떠야 하겠습니다. 지금부터라도 빛과 소금의 모습으로 돌아서게 될 때, 나귀새끼를 타신 예수님의 제자들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을 닮은 삶을 살아야 할 이유입니다.
메시아의 길을 막아서는 훼방꾼들을 맥추지 못하게 하셨습니다(39-40절).
들켜버렸습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탄 기독교인의 속내를 말입니다. 제가 신학생 시절에 배운 감동적인 문장 하나는 “No Cross, No Crown!”였습니다. 그래서 그 길을 걷겠다고 수도 없이 다짐 또 다짐을 했습니다. 그런데 힘들고 어려울 때는 큰 위안이 되고 용기도 주었는데, 나이가 들고 교회가 힘을 얻자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효과적인 목회가 하나님의 뜻이려니로 바뀌더니, 그렇게 비판하던 가난뱅이 목회를 벗어던지고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바리새파 사람들도 그랬을 것입니다. 초라하고 가난뱅이의 입술로 찬양하는 것이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처럼 들렸을 것입니다. 신앙생활에도 품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은 단호했습니다. “그들이 입을 다물면, 돌들이 소리칠 것이다.”고 말입니다. 입술로도 삶으로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은 위선자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3. 지난 26일자 1번이 24일자와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이만방 묵상식구가 귀띔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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