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437.

시편 시 32:8-9.

찬송 252, 256.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어느 시인은 루치아노 파바로티에 대한 시를 이렇게 썼습니다. “그의 거구 안에는 곤륜산이 들어 있다. 소리의 여의 주, 해와 달도 들어있다. 노래를 부를 땐 그는 그 해와 달을 번갈아 입 밖으로 토했다간 회수한다.” 우렁찬 자연의 호흡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 시대 최고의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그가 어제 그의 고향인 모데나 자택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0797일 방송>

 

2. 성령강림절 후 열여덟째 주일의 복음서의 말씀, 9:38-50을 본문으로 복음 전하는 자들을 선대하라.”는 제목으로 설교하려고 합니다. 요즘엔 다양하게 복음을 전하는 경향입니다. 신학을 전공한 목사를 비롯해서, 의료와 농업 태권도 등 전문직을 가지고 선교현장에 뛰어든 평신도 선교사들에 이르기까지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는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야 옳은 것 같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복음 전도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28:18-20).

 

복음 전도는 예수님의 이름을 앞세우는 모든 활동들입니다(38).

제자들의 전도보고는 간혹 특별한 것이 있었습니다. 아주 낯선 사람들이 자신들의 특별한 방식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했습니다. 저의 장모님은 시골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무당 푸닥거리를 구경하고 있었다 했습니다. 그런데 땀을 흘리며 껑충껑충 뛰던 무당이 갑자기 멈춰 서더랍니다. 그러면서 여기 혹시 예수 믿는 사람이 있으면 나가주시오. 예수 귀신이 가장 힘이 강해서 신령님이 올 수 없다고 합니다.”라고 하더랍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예수쟁이는 자신뿐이어서 쫓겨나듯 나왔다 하셨습니다. 그런가하면 요즘 무당들은 연구를 한 덕분인지 부처상, 예수상, 성모상을 차려놓고 손님들의 취향에 맞게 점을 쳐 준다고 합니다. 크리스천 여부를 떠나서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에겐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비록 돈벌이 수단으로 무당 짓을 하고 있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복음 전도를 방해하지 않는 것도 소극적 전도활동입니다(39-40).

사람들은 다양한 성격과 태도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소극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도 있고 적극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도 있습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그럴 수 있습니다. 우리들 교우들을 분석해 보면 적극적인 신앙인은 매우 적습니다. 대부분이 존재감이 없는 소극적인 신앙인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도도한 물결처럼 엄청난 세력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가령 1970년대에 대규모 전도 집회가 유행하듯 하였는데, 이런 전도 집회나 부흥회는 소극적인 신앙인들을 깨우고 움직이게 하는 촉매 역할을 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평범한 보통의 신앙인들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미국의 대통령 링컨은 하나님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사람들은 보통의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들을 많이 두신 것이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복음 전도자들을 협력한 사람들에겐 하늘의 상이 있을 것입니다(41).

얼마 전에 평신도 한 분을 만났습니다. 그 분은 저의 중국 선교를 적극적으로 협력한 의사입니다. 매년 여름이면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선교여행을 떠났는데, 미용봉사를 가장 많이 하였고, 그 다음이 의료봉사였습니다. 미용봉사에 비해서 의료봉사는 조력자들이 많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 의사는 자기 교회 교우들 중에서 조력자들을 모집, 함께 참여하였습니다. 내과 치과 한의과를 운영하였는데, 의사를 처음 만나는 분들도 많았고 효과도 컸습니다. 하루에 수백만 원의 손해를 감수한 분들입니다. 이런 분들에게 하나님의 상이란 무엇일까요?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시는 것, 그 보다 더 큰 상은 없습니다. 예수님의 이름 외에 구원받을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습니다(4:12). 오늘의 전도는 구체적인 일상 속의 향기를 통해서 예수님의 이름을 전하는 이들이 절실한 때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

묵상자료 7430.

시편 시 31:14-16.

찬송 19.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침묵은 예술이다. 웅변도 예술이다. 그러나 경청은 잊혀져 가는 예술이다. 경청을 잘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고대 로마의 정치가 키케로의 남긴 말인데요. 정말 말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주는 것 또한 중요한 것 같습니다. 내 얘기를 진심으로 들어주는 사람에게는 믿음도 더 생기고 마음도 조금 더 열게 되지 않아요.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혹시 내 얘기 하느라 다른 사람이 말할 틈을 주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오늘은 말 보다는 귀를 더 많이 여는 그런 하루였으면 좋겠습니다. <KBS FM 1, 새아침의 클래식, 200797일 방송>

 

2. 오늘은 성령강림절후 열일곱째 주일로 사도서간문 약 3:13-4:10을 본문으로 하늘의 지혜를 찾으라.”는 제목으로 설교하려고 합니다. 흔히 야고보서를 신약의 지혜문학()이라고 부릅니다. 지혜란 삶을 살아가는 기술로, 좋은 대인관계를 희망하는 모든 생각과 행동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니 지혜로운 사람은 행복한 삶을 살아갈 자격을 갖추었다 하겠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지혜로운 사람답게 살아가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13).

히브리 사상에서 지혜는 부지런함, 정직, 절제, 순결, 좋은 평판에 대한 관심과 같은 덕행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를 요약하듯 야고보는 지혜를 온유한 마음과 착한 생활을 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런 지혜가 목표하는 것은 좋은 인간관계를 희망하는 생각과 행동이라고 하겠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의 첫 번째 특징인 온유함이란 친절 겸손 동정심 등을 의미하는데, 이를 상대에 대한 배려심이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결국 사람답게 살아가는 일이란 인간관계에서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요즘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올라섰다 해서 자부심이 커진 것 같은데, 그 증거로 성숙한 시민의식을 꼽고 있는 것을 주목해야 하겠습니다. 물리력에 의한 시민의식이 아니라, 도덕과 윤리에 기초한 시민의식이 바탕에 깔려 있을 때, 진정한 민주시민으로써 자긍심을 가져도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세속적인 지혜를 경계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14-16).

코로나 19를 겪으면서 인터넷을 통한 세계인의 소통이 분명해진 것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우리나라가 수많은 세계인으로부터 여러 가지 측면에서 호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웃 나라인 일본과 중국에 대한 국민감정이 훨씬 더 나빠져 버렸습니다. 중국은 우리나라를 소국 대하듯 하더니, 이제는 시기심과 이기심으로 우리 문화를 도둑질해 가려고 안달입니다. 그런가하면 일본은 세계 2차 대전을 일으켜 36년간 식민통치하면서 말과 이름까지 지우게 했던 장본인들인데, 최근엔 우리나라의 급속한 발전에 시기심과 이기심으로 혐한 프레임으로 가관(可觀)도 이런 가관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시기심과 이기심은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이 아니라 쓰러뜨리려는 무서운 함정을 가진 악한 지혜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숙한 우리가 그들처럼 시기 질투나 하고 저주할 수가 있을까요? 우리가 절대로 따라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하늘의 지혜를 찾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17-18).

사도가 제시하는 하늘의 지혜란, 순결과 평화 점잖음과 자비 착한 행실 그리고 편견과 위선 없음이라고 정의합니다. 앞서 언급했던 세속적인 지혜와는 너무 판이하게 다른 하늘의 지혜는, 훈련과 노력으로 체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또한 순결과 평화, 점잖음과 자비 등은 그 어떤 도덕 재무장으로도 달성할 수 없는 지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들 인간의 힘으로 만들 수도 없고 가질 수도 없는, 그야말로 하늘에서만 허락되는 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어느 누가 있어 편견과 위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그래서 우리는 이 하늘의 지혜를 구하는 길 밖에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러면 주시리라”(1:5)고 권면했던 것입니다. 주시는 것 여부는 하나님 몫입니다. 우리는 구할 뿐 다른 길이 없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

묵상자료 7423.

시편 시 30:4-6.

찬송 419.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 때도 알았더라면 더 즐겁게 살고, 덜 고민했으리라.” 좋은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 알고 있는 걸, 그 때는 절대 알 수가 없다는 거지요. 학생 때 공부하는 것이 얼마나 큰 인생에 큰 보약인지, 학창실절이 지나야 깨닫고요. 아이를 키워보고 나서야 부모님의 큰 사랑을 깨닫습니다. 떠나고 나서야 그 사람이 얼마나 큰 그늘이었는지 깨닫습니다. 떠나고, 지나고, 그 사라지기 전에 붙잡을 수 있고, 그럴 수 있다면 참 좋겠는데요. 지금 알고 있고 깨닫고 있는 것만이라도, 행동으로 옮기면서 살 수 있으면 합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796일 방송>

 

2. 오늘은 성령강림절 후 열여섯째 주일의 구약 사 50:4-10을 본문으로 야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하려고 합니다. 요즘 전 세계적인 구호 위드 코로나/with Corona” 라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이겨낼 수 없다면, 함께 사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말이라고 합니다. 슬픈 얘기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함께 살아야 할 주제는 야훼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삶이야말로 우리 크리스천이 힘써야 할 최상의 과제입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선한 생각을 부어주십니다(4-5).

고달픈 자를 격려하고, 마음이 상한 자에게 다정하게 말을 하며, 매일 배우고 싶은 깨우침을 주시고, 남의 말을 차분히 들어주는 귀를 갖게 하시고, 의롭고 자랑스러운 일에 앞장서게 하시는 분은 야훼 하나님이시라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사랑스럽고 멋진 인생을 살고 싶어 합니다. 그런 삶을 꿈꾸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미국의 단편소설가 나다나엘 호손은 큰 바위 얼굴을 통해서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서 사는 것이라고 말했고, 러시아의 소설가 톨스토이는 자신의 거대한 영지를 가난한 소작농들에게 분배해 주고, 자신의 소설에서 나오는 인세를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서 사용하고자 힘썼습니다. 어떻게 이런 남다른 생각들을 실천했을까요? 그것은 그들의 마음을 흔드는 하나님의 사랑이 파고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악한 생각은 마귀의 소행이지만, 선한 생각은 성령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총입니다.

 

하나님만이 거짓과 불의를 견디게 하시며 당당하게 하십니다(6-7).

김지하 사 김민기 곡의 <금관의 예수>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얼어붙은 저 하늘 얼어붙은 저 벌판/ 태양도 빛을 잃어 아 캄캄한 저 가난의 거리/ 어디에서 왔나 얼굴 여윈 사람들/ 무얼 찾아 헤매이나 저 눈 저 메마른 손길/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소서” 70년대의 폭력은 겉과 안이 사악함으로 똘똘 뭉쳐 있었으나, 21세인 요즘의 거짓과 불의는 겉은 합법을 가장한 지능적인 악랄함으로 뭉쳐 있습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공식 앞에서 맥없이 무너져 내리는 양심들입니다. 그러나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불의 앞에서 끝까지 당당하게 참고 견디게 하는 힘은, 십자가에서 친히 모범을 보여주신 우리 주님이 주실 수 있는 능력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를 지켜주시고 승리하게 하시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8-10).

시편 121편은 절망과 슬픔의 한 복판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강렬한 시선을 찾을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서 희망이 없다 깨닫는 순간, 하나님을 향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 중의 행운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하나님의 도우심 은총이라고 설명해야 할 것입니다. 누구나 이런 행운을 누리는 것은 아닌 때문입니다. 믿음이라는 선물을 받은 사람들이 누릴 축복입니다(2:8). 저는 인생을 파도위의 삶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파도에 자신을 맡기듯 포기하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파도 그 너머 먹구름 사이로 스쳐지나가는 파란 하늘을 애써 찾으려는 사람들에게는 희망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의 손을 잡아주고 싶어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 그를 넘어트릴 힘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래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손을 놓지 말게 하옵소서.”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

묵상자료 7416.

시편 시 28:4-5.

찬송 175.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아침에 일어나면은 우리 얼굴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요? 좋은 꿈을 꾸다가 알람 소리에 깨신 분들은 약간 아쉬운 표정이겠고, 개운하게 잘 주무신 분들은 입가에 미소가 감도시겠지요. 미소를 지으면서 하루를 시작하면, 하루 종일 미소 지을 일이 생긴다고 하니까요. 웃는 표정으로 하루를 열어보시기 바랍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0795일 방송>

 

2. 오늘은 성령강림절 후 열다섯째 주일로, 마가복음 7:31-37을 본문으로 우리가 들어야 할 말씀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하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저에게는 시의 적절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으로 오늘 실제로 청각장애를 가진 교우들을 찾아가서 설교를 하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제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장애우 교우들을 향해 에바타!”를 외치고 있습니다.

 

세상 구석구석에는 각종 장애자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31-32).

주님은 두로와 시돈 그리고 데가볼리 지방을 돌아서 갈릴리 호수로 돌아오셨다고 했습니다.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시면서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 그리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시고 다시 갈릴리로 돌아오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생략된 내용이라고 생각됩니다만, 주님이 가시는 곳에는 언제나 불쌍한 사람들이 몰려왔던 것입니다. 겉으로 보아서는 건강해 보이고 아름다워 보이지만, 사실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누구나 여러 질병들을 안고 살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세계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은 피할 수 없는 진실입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인간의 육체는 흙으로 지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영원한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말입니다. 얼마나 다행스러운 소식이며 희망적인 소식입니까?

 

주님이 하신 치료는 에바타!”라고 하신 말씀이었습니다(33-35).

청각 장애인을 대하시는 주님의 치료과정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주님은 손가락을 그 환자의 귓속에 넣으셨다는 것이고, 다음에는 침을 발라 그 환자의 혀에 대신 후에, 하늘을 우러러 보시며 한숨을 내쉰 다음에 에바타!” 열려라!” 하고 소리치시자,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려서 말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귓속에 손가락을 넣으신 것이나 손가락에 침을 발라 혀에 대셨다는 것은, 그 환자의 문제가 귀와 혀에 있다는 점을 확인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치료의 능력은 에바타! 열려라!”는 주님의 말씀에 있었습니다. 그러자 귀는 열리고 혀는 풀렸으며 말을 제대로 하게 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청각장애인의 짊어지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충분히 알고 계실 뿐 아니라, 해결방법도 알고 계시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그것은 말씀이었고, 말씀이 있는 곳에 주님께서 함께 계십니다.

 

주님은 침묵 명령을 하셨으나, 사람들은 널리 소문을 퍼트렸습니다(36-37).

주님의 침묵 명령은 청개구리 작전을 활용하신 것 같습니다. 기적을 목격한 사람들이 입을 꾹 닫을 수 없는 것을 아셨을 텐데, 침묵 명령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물론 십자가에 죽으시고 영광의 부활을 하실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성취되기 위해서는 도중에 주님을 왕으로 모시려는 운동이 일어나서는 안 될 것입니다. 어차피 우리들 인간이란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테니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확실히 들어야 할 진리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보여주신 참된 기적이란 십자가에 죽으신 일이고, 그 죽음을 물리치고 다시 살아나신 일입니다. 자칫 병자를 고쳐주고 빵을 먹여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영원한 새 생명을 가져오실 주님이신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고서는 부활의 아침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십자가에서 이 진리를 깨닫는 이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3. 오늘 저는 문정동에 위치한 주성청각장애인 교회에서 설교합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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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자료 7409.

시편 시 26:10-12.

찬송 35, 388.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곰곰이 생각해서 좋은 일이 있는가 하면, 생각하지 않는 쪽이 나을 때가 있지요. 다시 찾아 좋을 때도 있습니다만, 더 이상 찾지 않고 덮어두는 것이 나은 순간도 있습니다. 조각난 인연, 낙방한 시험, 날아간 기회, 다시 찾으려고 해도 되돌릴 수 없는 것들은 잊어버리는 쪽이 나을 때도 있습니다. 잘 버리고 잘 잊는 것도, 때론 잘 사는 것과 통할 때가 있지요. 살면서 자꾸 배우게 되는 한 가지입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7827일 방송>

 

2. 오늘은 성령강림절후 열넷째 주일로 사도서간 엡 6:10-20을 본문으로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크리스천의 자세라는 제목으로 설교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인류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무서운 질병 앞에서 신음하고 있습니다. 바로 코로나 바이러스가 인류를 불행에 빠트릴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흔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먼저 우리 인류가 직면한 문제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겠습니다(10-12).

여러분은 우리 인류를 절망하게 하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왜 생겨났다고 생각하십니까? 바울 사도는 속임수를 쓰는 악마라고 규정하는데, 지금 우리를 속이는 악마란 인간 안에 숨어 있는 탐욕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자연을 파괴하고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는 인간의 탐욕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크리스천들이 앞장을 섰던 것입니다. 방송에 자주 등장하는 한 논객은 자신이 기독교를 믿지 않는 세 가지 이유 가운데 하나로 기독교인의 탐욕을 꼽았습니다. 이번 코로나19 바이러스는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병균이 아니라,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과 함께 사는 야생동물들 안에 숙주로 존재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 인간이 발전이라는 명목으로 자연환경을 파괴하니까, 그 야생동물들이 더 이상 살 수 없어서 튀어나와 문제를 일으킨 것입니다. 무더운 날씨나,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는 엄청난 홍수나 화재는 자연환경을 파괴한 결과인 것입니다. 인간중심의 발전을 멈추고, 자연환경을 소중하게 여기고 인간과 자연이 공생하는 지혜를 찾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탐욕을 악마로 규정하고 싸우라고 말씀하십니다(13-18).

지금 우리는 크리스천으로써 인간중심적인 탐욕과 싸우기 위해서 과감히 나서야 합니다. 저는 이것을 영적 전쟁이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갖춰야 할 영적 무기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는 일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사도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째 도덕 재무장이라 말씀합니다. 진리와 정의 평화와 용서와 같은 무기들입니다. 우리 기독교회가 세상으로부터 공격을 받는 것들이 어떤 것입니까? 엉뚱하게도 기독교인들의 부도덕한 모습들이라는 것입니다. 신앙인 이전에 한 인간으로써 해선 안 될 것들, 거짓말을 잘하고, 상습적인 부정과 비리, 그리고 끔찍한 성폭력 같은 악행들을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거룩한 성도의 자리로 돌아서는 일입니다. 둘째, 이 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사도는 깨어있는 신앙을 가질 것을 권고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를 둔 신앙, 성령의 도움을 구하는 신앙, 구원의 확신을 가진 신앙을 말합니다.

 

건강한 신앙을 회복하는 길은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하는 일입니다(19-20).

로마 가톨릭의 신학자 한스 큉은 교회를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정의했습니다. 더 이상 교회는 건물이나 제도, 물질이 아니라,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런 교회를 몸에 비유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나머지 지체는 성도들이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속한 지체들은 모두 다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각기 제 역할을 충실히 하도록 서로 격려하고 협력하는 관계라는 말입니다. 초대교회인 사도행전 교회는 이런 역할을 하는데 있어서 모범을 보이고 있습니다. 말씀을 선포하는 이, 전도하는 이, 가르치는 이, 봉사하는 이가 모두 제구실을 다했던 것입니다. 땅 위에 있는 교회는 항상 시련을 받아왔고, 또 시련과 역경 속에서 교회는 더욱 빛을 발해왔습니다. 코로나 19라는 전대미문의 시련을 겪고 있지만,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제 구실을 하는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크리스천의 모습이라고 확신하며,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모든 악마로부터 자신과 교회를 지켜야 하겠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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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자료 7402.

시편 시 25:6-8.

찬송 521.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어제 처서가 지나면서 바람이 정말 달라졌어요. 아무리 더워 봐야 처서 지나면 어쩔 수 없다고 말씀하시는, 어르신들의 가르침 같은 한 마디가 그렇게 딱 맞을 수가 없었습니다. 열대야도 사라지고 이제 낮 더위만 수그러들 며는 아주 이상적인 날씨가 될 것 같은데요. 오늘도 좋은 하루를 기대합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07824일 방송>

 

2. 오늘은 성령강림절후 열셋째 주일로 구약 이사야 29:11-19을 본문으로 행동하는 신앙생활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하려고 합니다. 루터는 신학생들에게 “oratio(기도), meditatio(묵상), tentatio(실천)”이라는 아주 오래된 영적성장의 훈련법을 소개한바 있습니다. 겸손과 진실함으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기도와, 성경을 집중적으로 반복 성찰하는 묵상과, 삶의 현장에서 경험되고 고뇌하는 실천이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고 고백하는 대로 살고 있습니까? 물어야 합니다.

 

예나 제나 입으로만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11-14).

말이 무성한 시대는 위태로운 징조입니다. 진짜보다는 가짜가 판을 치는 때문입니다. 복음가로 도배된 예배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양심을 속이는 판국에 감정을 위장하기란 너무 쉽습니다. 이사야 시대가 그랬다 합니다. 하나님을 높이고 경배하는데도 실상은 습관에 젖은 것이고, 진심은 멀리 떠난 다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집을 부동산 장사소굴로 만드는 목사의 신령하게 부르는 찬송은 위선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벽창호처럼 예수는 그리스도만을 외치는 가난뱅이 목사는 아무도 동정조차 하지 않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어쩌면 이런 구조가 정상일 것 같습니다. 입으로만 하나님과 이웃을 섬길 수 없음을 너무도 잘 알기에, 고난의 길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데 당연할 것 아닙니까?

 

옹기그릇이 옹기장이를 비난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15-16).

하나님 책임론을 들먹거리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아들을 낳지 못하는 것도, 좋은 대학에 합격하지 못하는 것도, 부자가 되지 못하는 것도 모두 하나님 때문이랍니다. “왜 나를 이렇게 낳았어?” 맞선에서 퇴짜를 맞은 처녀가 제 엄마에게 했던 첫 마디 말이랍니다. 그래서 무슨 짓을 하건 엄마 탓이고, 하나님 탓으로 돌리면 된다 생각하게 되었답니다. 가장 쉬운 문제풀이가 아닙니까? 잘 되면 제 탓, 못되면 조상 탓일 테니까요. 왜 나를 가난뱅이 농부의 자식으로 보내셨을까? 왜 힘든 삶을 살도록 세상에 태어났을까? 이런 물음을 계속하노라면 가치 있는 대답과 희망의 섬광이 비출 텐데 말입니다. 하나님의 깊은 뜻을 찾으러 애쓸 때, 김구나 안창호가 되진 못하더라도, 그런대로 쓸모 있는 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겝니다.

 

수풀이 과수원이 되고 천민이 귀인과 뒤바뀌는 날이 옵니다(17-20).

하나님의 뜻은 깊을 뿐 아니라 넓고 높으셨습니다. 그래서 쉽게 눈으로 마음으로 알아차릴 수 없었습니다. 멀지 않아 의미 없어 보이던 수풀이 근사한 과수원으로 바뀌고, 귀머거리는 책 읽는 소리를 듣게 되고, 캄캄한 세상을 살던 소경들이 하나님 앞에서 기뻐할 것이라 합니다. 그리고 천덕꾸러기 가난뱅이와 병자들이 폭군도 아첨꾼도 그리고 악한 일을 일삼던 못된 건달들이 다 사라져 버린 세상에서 춤을 추고 노래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입으로만이 아니라 진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찾아 구하고, 힘들고 어려워도 제 갈 길을 고집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분명히 알고 믿을 것은 천지를 지으신 야훼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연약한 손과 발음 붙잡아 주시고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그때까진 그래야 합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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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자료 7395.

시편 시 23:1-3.

찬송 316.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한 곡의 음악이라도 가슴으로 듣고 있는가? 한 권의 책이라도 마음모아 읽고 있는가? 한 방울의 눈물이라도 뜨겁게 흘리고 있는가? 한 가지 일이라도 정성껏 하고 있는가? 단 하루라도 찬란하게 살고 있는가?” 정용철 님의 <진심으로> 의 한 구절입니다. 정말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순간순간 마음을 다해 살아가는 것만큼 가치 있는 하루를 만들게 하는 것이 있을까요? <KBS FM 1, 새아침의 클래식, 200789일 방송>

 

2. 오늘은 성령강림절후 열두째 주일로, 요한복음서 6:51-58의 말씀을 본문으로 우리가 먹어야 할 하늘의 떡이란 제목으로 설교하려고 합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다.” 전형적인 계시복음입니다. 예수님이 당신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렇게 알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이를 믿고 믿지 않는 것은 우리들의 몫입니다.

 

우리는 매일 먹어야 할 양식 때문에 두려워하며 살고 있습니다(51-52).

많은 사람들이 끝도 없이 되풀이되는 양식을 얻기 위해서 힘든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 아닙니까?” 어디선가 들어본 말인가요? 우리는 굶주림 속에서 사는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의 가난한 어린이들을 TV를 통해서 시청하고 있습니다. 마실 물과 먹을 양식 그리고 편한 잠자리가 절실한 사람들이 너무도 많은 게 현실입니다. 잉여농산물 만으로도 그들을 충분히 먹이고도 남는다고 합니다. 문제는 전쟁입니다. 정치적인 불안정이나 소수 민족의 독립투쟁 뿐 아니라, 탐욕에 눈먼 사람들이 양식을 팔아 무기를 사서 전쟁을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른바 강대국들이 무기를 만들어 전쟁을 부추기는 현상은 불편한 진실입니다. 고도로 발전된 돈벌이 수단으로 전쟁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만이 대안입니다(53-56).

루터 음악가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예수 인류의 소망과 기쁨>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종교적인 차원을 떠나서, 막힌 담을 헐고 전혀 다른 두 세계를 하나도 만드는 평화를 이룩할 유일한 힘으로, 예수님이 짊어지신 십자가를 대안으로 삼는데 공감하는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는 내 살과 내 피를 의미하는 것은 십자가에서 희생 제물이 되신 예수님의 죽으심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이래로 십자가의 죽으심을 기억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으로 제정한 성찬예식은 여전히 오해와 곡해 속에 있습니다. 성찬에서 먹고 마시는 떡과 잔에 예수님의 말씀이 실재하고 있음을 상징하는 신앙과 달리, 로마 가톨릭교회의 화체설은 종소리가 울리는 순간에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변한다는 신앙이 그런 오해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저스틴의 <변증서1>도 세례자들만 모여 문을 잠그고 행한 성찬식의 오해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매일의 양식은 물론 하늘의 양식인 말씀을 먹어야 강건하게 살 수 있습니다(57-58).

육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동안 매일의 양식은 필수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매일의 양식을 먹을 수 있도록 서로 배려하는 연대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코로나19가 선포되자 매점매석하는 꼴사나운 모습이 선진국에서 먼저 시작되었고, 이제는 바이러스를 이길 백신도 선진국이 독점하는 이기적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대부분이 기독교 신앙을 기초로 두고 있는 국가들로, 이런 나라들과 사람들이 반드시 들어야 할 것이 하늘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미국의 꼰대 기독교인이 중심을 이루는 이른바 바이블 벨트에 살고 있는 신앙인들은 하나님이 자기들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신앙인데, 링컨처럼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자기중심적 신앙의 문제는, 성경의 중심점을 망각하는데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류에게 바라시는 삶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3. 오늘은 일흔 여섯돌 광복절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에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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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자료 7388.

시편 시 22:9-11.

찬송 518.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밥을 짓고, 옷을 짓고, 집을 짓고, 우리의 의식주를 이루고 있는 것들은, 다 어떠한 재료를 가지고 새로운 것들을 짓는 것들이지요. 짓다는 말이 큰 그릇처럼 넉넉하게 다가옵니다. 노래를 짓고, 시를 짓고, 표정을 짓고. 그러고 보면 참 많은 일을 짓고 살아가는 우리들이지요. 지금 하루의 깔끔한 마무리를 지어야 할 시간입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783일 방송>

 

2. 성령강림절후 열한째 주일의 사도서간 엡 4:17-5:2을 본문으로 옛 사람에서 새 사람으로라는 제목으로 설교하려고 합니다. 누구나 자신의 옛 모습에 대해서 부족함과 어리석음을 후회하곤 합니다. 그리고 좀 더 나은 사람으로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이미 길들여진 옛 사람을 좀처럼 벗어던지지를 못해서 고민합니다. 어떻게 새사람으로 살 수 있을까요?

 

이방인처럼 사는 방식을 고쳐야 합니다(17-23).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을 이방인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헛된 생각을 하고, 어두운 마음 때문에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 그 결과 무지하고 완고합니다. 부도덕하고 방탕한 생활에 빠져서 더러운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욕에 말려 썩어빠진 인간성을 붙들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얼마 전에 한 방송에 자주 나오는 논객이 자신이 개신교인이 되지 않는 이유를 몇 가지로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내용을 들어보니까 기독교의 진리에 대해서가 아니라 기독교인들의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증오심으로 무장하고, 탐욕으로 가득하고, 맹목성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이방인의 모습으로 변질되어 버린 것입니다.

 

우선 도덕과 윤리성을 회복하는 일입니다(24-32).

거짓말이 아니라 진실을 말하고, 화를 내더라도 하루가 지나기 전에 화를 풀고, 악마에게 발붙일 틈을 주지 말고, 도둑질 대신 가난한 이들을 돕고, 입으로 상처주지 말고 도움을 주고 격려하고, 서로 너그럽게 포용하고 용서하는 도덕과 윤리성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인 존재가 천국에 자리할 곳이 없다는 것쯤은 깨닫게 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땅의 부모도 제대로 섬기지 못하는 사람이 하늘 부모를 섬길 수 있다는 어불성설이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지금처럼 기독교회의 지도자들과 신도들이 보이는 작태가 계속된다면, 기독교회는 오래지 않아 사라질 것이라 얘기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예수 믿는다는 말을 못할 정도로 부끄럽고 타락한 종교로 인식되는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본을 따라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5:1-2).

기독교는 증오가 아니라 사랑의 종교입니다. 사랑으로 세상을 창조하셨고, 사랑으로 세상을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예수님은 죄와 죽음 아래 살고 있는 세상을 위해서 십자가를 짊어지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참 사랑을 십자가에서 찾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또한 기독교는 탐욕이 아니라 분수를 지키는 평화의 종교입니다. 나봇의 포도원을 탐하다 병이 난 아합왕을 위해 위증으로 나봇을 죽인 이세벨은 나봇의 포도원을 취했지만, 그 죗값으로 왕과 왕비 그리고 왕자가 벌을 받았습니다. 선한 사마리아 비유는 필요한 사람과 나누라고 가르칩니다. 기독교는 맹목성이 아니라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도록 끊임없이 생각하고 질문하게 하고 대화의 종교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세상을 슬프게 하는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사랑을 친히 실천하심으로 새 가능성과 지평을 여셨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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