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437호.
시편 시 32:8-9.
찬송 252, 256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어느 시인은 루치아노 파바로티에 대한 시를 이렇게 썼습니다. “그의 거구 안에는 곤륜산이 들어 있다. 소리의 여의 주, 해와 달도 들어있다. 노래를 부를 땐 그는 그 해와 달을 번갈아 입 밖으로 토했다간 회수한다.” 우렁찬 자연의 호흡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 시대 최고의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그가 어제 그의 고향인 모데나 자택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07년 9월 7일 방송>
2. 성령강림절 후 열여덟째 주일의 복음서의 말씀, 막 9:38-50을 본문으로 “복음 전하는 자들을 선대하라.”는 제목으로 설교하려고 합니다. 요즘엔 다양하게 복음을 전하는 경향입니다. 신학을 전공한 목사를 비롯해서, 의료와 농업 태권도 등 전문직을 가지고 선교현장에 뛰어든 평신도 선교사들에 이르기까지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는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야 옳은 것 같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복음 전도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마 28:18-20).
복음 전도는 예수님의 이름을 앞세우는 모든 활동들입니다(38절).
제자들의 전도보고는 간혹 특별한 것이 있었습니다. 아주 낯선 사람들이 자신들의 특별한 방식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했습니다. 저의 장모님은 시골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무당 푸닥거리를 구경하고 있었다 했습니다. 그런데 땀을 흘리며 껑충껑충 뛰던 무당이 갑자기 멈춰 서더랍니다. 그러면서 “여기 혹시 예수 믿는 사람이 있으면 나가주시오. 예수 귀신이 가장 힘이 강해서 신령님이 올 수 없다고 합니다.”라고 하더랍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예수쟁이는 자신뿐이어서 쫓겨나듯 나왔다 하셨습니다. 그런가하면 요즘 무당들은 연구를 한 덕분인지 부처상, 예수상, 성모상을 차려놓고 손님들의 취향에 맞게 점을 쳐 준다고 합니다. 크리스천 여부를 떠나서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에겐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비록 돈벌이 수단으로 무당 짓을 하고 있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복음 전도를 방해하지 않는 것도 소극적 전도활동입니다(39-40절).
사람들은 다양한 성격과 태도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소극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도 있고 적극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도 있습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그럴 수 있습니다. 우리들 교우들을 분석해 보면 적극적인 신앙인은 매우 적습니다. 대부분이 존재감이 없는 소극적인 신앙인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도도한 물결처럼 엄청난 세력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가령 1970년대에 대규모 전도 집회가 유행하듯 하였는데, 이런 전도 집회나 부흥회는 소극적인 신앙인들을 깨우고 움직이게 하는 촉매 역할을 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평범한 보통의 신앙인들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미국의 대통령 링컨은 “하나님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사람들은 보통의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들을 많이 두신 것이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복음 전도자들을 협력한 사람들에겐 하늘의 상이 있을 것입니다(41절).
얼마 전에 평신도 한 분을 만났습니다. 그 분은 저의 중국 선교를 적극적으로 협력한 의사입니다. 매년 여름이면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선교여행을 떠났는데, 미용봉사를 가장 많이 하였고, 그 다음이 의료봉사였습니다. 미용봉사에 비해서 의료봉사는 조력자들이 많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 의사는 자기 교회 교우들 중에서 조력자들을 모집, 함께 참여하였습니다. 내과 치과 한의과를 운영하였는데, 의사를 처음 만나는 분들도 많았고 효과도 컸습니다. 하루에 수백만 원의 손해를 감수한 분들입니다. 이런 분들에게 하나님의 상이란 무엇일까요?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시는 것, 그 보다 더 큰 상은 없습니다. 예수님의 이름 외에 구원받을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습니다(행 4:12). 오늘의 전도는 구체적인 일상 속의 향기를 통해서 예수님의 이름을 전하는 이들이 절실한 때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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