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778호(2025. 5. 29. 목요일).
시편 119:79-81.
찬송 342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네덜란드 격언에는 이런 말이 있다. “비에 젖은 자는 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비가 내리면 젖지 않으려고 비를 피한다. 그러나 막상 피할 곳도 없고 이미 온 몸이 젖고 나면 비가 전혀 두렵지 않게 된다. 비에 젖듯 우리 삶도 막상 젖으면 두렵지 않게 된다. 고통이나 시련도 마찬가지이다. 처음 한동안은 못 견디게 힘들지만, 그 과정을 겪은 후에는 더 이상 두려움도 아픔도 느끼지 않게 되고 담대하게 맞서게 된다. 희망씨, 가슴에 새기는 한 줄 명언, p.262.
2. “에스겔이 활동한 시대와 장소(1-4절)”과 “환상을 본 에스겔(5-14절)”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둘째 단락입니다. 에스겔은 남왕국 유다의 요시야 왕 때 태어나 주전597년 왕과 다른 관리들과 함께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 후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이 만나는 하류에 위치한 그발강 가에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환상을 보여 주셨다고 증언합니다. 이런 환상들을 해석하거나 설명하려는 것 자체가 무리한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해를 하자고 한다면, 그 환상은 모두 사람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는데, 네 생물이 각각 얼굴과 두 날개를 가졌는데, 그 얼굴들은 사람과 사자와 소와 독수리의 얼굴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보좌를 섬기는 이 네 생물들은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요, 사자는 짐승들의 왕이고, 소는 가축들의 왕이며, 독수리는 새들의 왕입니다. 그들이 섬기는 하나님이 이 땅과 하늘의 왕이신 만왕의 왕이시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비록 하나님의 백성인 유다 사람들이 바벨론에 포로가 되었지만, 그들이 섬기는 하나님은 이 땅과 하늘의 왕이시라는 것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그 생물들 한 가운데 활활 타는 숯불 같은 모양이 보였는데, 마치 횃불처럼 그 생물들 사이를 왔다 갔다 하고 있었고, 그 불은 번쩍번쩍 빛났고, 번개처럼 이리 저리 번쩍거렸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상징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심판의 진노가 머지않았음을 암시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에스겔이 보았던 것은 하나님께서 환상을 통해서 포로로 잡혀가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전히 당신이 그들의 하나님이심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며, 하나님은 무서운 심판을 통해서 일하실 것을 말씀한다 하겠습니다.
성경에는 여러 종류의 심판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살던 소돔과 고모라에 내리셨던 과거적 심판도 있고, 바벨론 포로와 같은 현세적인 심판도 있으며, 요한 계시록에서 말씀하는 미래적 심판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심판들은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심판은 그 역시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라는 점이 그것입니다. 영원한 멸망을 알리는 심판이라고 한다면, 이는 아무 소용없는 시간 낭비에 불과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심판을 통해서 의도하는 목적은 정신을 차리고 회개하게 하는 것이며, 마침내 하나님의 은총 아래서 살아가는 축복의 삶이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우리들 부모님이나 어른들이 자녀들이나 젊은이를 꾸짖는 것은 그들을 화나게 하고 더욱 더 멀리 떠나도록 하려함이 아니라, 본래의 자신/proto type으로 돌아와 정상적인 삶을 살도록 촉구하는 역설적인 방법이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채찍이나 심판의 진정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악감정을 품고 더욱 더 빗나가는 길로 치닫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뜻입니다. 제가 고등학생일 때, 하루는 선생님에게서 호된 꾸지람을 들었습니다. 같은 반 친구들이 다 보는 앞에서 세워두시고는 가슴을 후벼파는듯한 꾸중을 하신 것입니다. 그 따위로 무슨 대학엘 가겠다고 하느냐는 등의 말씀도 있었습니다. 아주 훗날 그 선생님은 제가 목회하는 부산의 교회 예배에 참석하셨고, 그 때의 서운함을 제가 말씀드렸을 때, 그게 선생이 할 수 있는 마지막 훈계였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채찍이 아플수록, 심판이 무서울수록, 하나님의 진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3. 오늘은 우리 주님께서 승천하심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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