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61(2000.12.8, 금요일)
성경말씀 : 빌 4:10-13.
찬송 : 433장.
제목 : 문제풀기.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어제는 사람이 그리운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자식들이 보고싶고, 손자가 보고싶은 사람들이며, 그 옛날 함께 쑥캐던 친구들이 그립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너무도 멀리만 있다고 말했습니다. 파주 근처에서 평생을 살았다는 한 아주머니는 좌골신경통을 앓고 있는데, 손이며 다리가 마비 현상이 와서, 부지런히 운동을 해야한다는 말에 눈물겹도록 걷고 또 걷고 있었습니다. 말씀을 많이 하는 분과 입을 꼭 다문 체 계시는 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소리를 높여서 말을 많이 하도록 권고합니다. 정지되어 있는 삶이 서서히 생기를 되찾고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데 분명한 것은 말하기의 힘이 효험이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2. 최근 근 한달 동안 미국 대통령 선거결과에 대해서 온 세상이 시끌벅적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던 미국이 아닌 것 같은 그런 생각을 가졌습니다. 개발도상 국가보다도 미숙한 면을 이곳 저곳에서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미국인들이 문제를 풀어 가는 방식에 대해서 새로운 눈을 뜨고 있습니다. 민주주의 사고방식 혹은 민주적인 문제풀기를 엿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이번 선거결과에 대한 미국인의 문제풀기 방식은, 우리가 길들여온 것과는 너무 다르다고 하는 점입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우리들이 미국인들을 얕잡아 보는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미국인들이 보여준 방식은 문제를 다 풀기까지는 덮어버리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문제투성이의 세상을 살아가는데, 대부분 우리 식은 문제가 터지면 욕을 하고 비난을 하다가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쉬 쉬 쉬 하는 쪽으로 진행하다가 어느 날, 정치적인 결단이니, 특단의 조치니 하는 문제의 내용과는 전혀 다른 외부 힘으로 덮어버리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갑니다. 보십시오. 신문에서 대서 특필하였던 사건 사고들이 불과 10여일 지나가면 용두사미가 되고, 적당한 선에서 덮는 것으로 문제를 풀어가고 있지 않습니까? 결과적으로 수면으로 올라오지만 않을 뿐, 여전히 언제든지 악재로 항상 남아 있다는 말입니다. 저는 미국 언론이며 재판부며 그리고 미국 국민들이 인내심을 갖고 문제를 풀기까지는 부끄럽지만, 수치스러운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문제를 덮어버리려고 하지 않고,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서 합리적인 해답을 찾아내려고 노력하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물론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올지는 미지수이고, 그런 바람직한 결과가 그렇게 중요하다고도 생각지 않습니다. 문제를 덮어 버리거나 얼머버리는 것이 아니라는 그런 진지한 문제풀기의 자세만으로도 충분히 존경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3.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합니다. 특히 13절에 대해서는 너무도 좋아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모든 문제 풀기의 공식이 여기에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능력을 주시는 그 분 안에서” 만사가 형통하다 는 공식 말입니다. 그러나 좀 더 구체적으로 이런 공식을 어떻게 대입하는지, 실제적으로 문제 풀기에서 어떻게 해야 바른지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살피거나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 낙관론이나, 불가능을 극복하는 그리스도의 가능성에 대해서만 몰두하고 있을 뿐, 신앙의 삶에 적용이라는 차원에서는 너무 허술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도 만능론을 가르치는 목사님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어떻게 기도하는 것이 바른 기도이며 성숙한 기독인의 기도인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는 바울 사도에게서 다른 모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어떤 형편에서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처할 줄도 알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주목할 말씀은 순경(順境)에서는 말할 것도 없었지만, 설사 역경이 닥쳐온다고 하더라도 그 속에서도 감사할 이유를 가지며 원망과 불평보다는 하나님의 깊고 넓으신 뜻을 이해하려고 힘쓴다는 말입니다. 어떻습니다. 여러분을 포함해서 너무도 많은 기독자들이 제 뜻대로 모든 일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사업이 번창하고 가족들이 모두 건강하고, 아이들은 탈없이 잘 자라주는 등등 말입니다. 오직 그 목표 하나 만을 가지고서 기도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는 기도한대로 살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눈을 뜹니다. 오히려 반대 현상이 생길 때가 있다는 것을 알고 실망하곤 합니다. 저는 가난한 딸이 시집가서 고생 고생하면서 친정 어머니를 더욱 사랑하고 존경하게 되었다는 얘기를 들은 일이 있습니다. 이 딸은 아직 소원을 성취하진 못했을지 몰라도, 정말 소중한 진리를 체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위대한 어머니의 모습 말입니다. 주님 안에서 나는 그 형편의 내용과는 아무 상관없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바울 사도와 여러분 자신을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루터의 말을 인용한 일이 있었습니다. “주님과 함께라면 지옥에라도 가겠다.” 학생들은 왜 지옥이냐? 고 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가는 길은 언제나 만사 형통이어야 한다는 공식이 그들을 붙잡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주님과 함께 가는 길은 오히려 햇빛 속보다는 어둡고 냉랭한 골짜기가 더 많을지 모릅니다. 제가 중학교 다닐 때 교회학교 선생님께 배운 노랫말에 [Walking with Jesus]가 있습니다. 간단한 영어이니까 한번 기억 나는 대로 옮겨 보겠습니다. “Walking with Jesus, walking everyday, walking all the day. Walking with Jesus, walking with Jesus alone. Walking in the sunshine, walking in the shadow, walking everyday, walking all the day. Walking with Jesus, walking with Jesus alone." 함께 부르고싶은 노래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라틴어 노래는 [도나 노비스 파쳄]이 있고, 헬라어 노래 [키리에 엘레이손]이 있습니다. 이런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날이 속히 왔으면 합니다.
4. 자족을 배우지 못하는 한, 여전히 문제를 덮어 버리는 상태에 있는지 모릅니다. 질병과 고통 속에서도, 기쁨과 즐거운 기회를 얻고서도 그 속에 담겨진 하나님의 귀한 뜻을 깨닫고 감사하며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는 한, 우리가 외치는 신앙의 구호나, 신념은 다 부질 없는 문제 덮기에 불과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지 않아서, 교회 섬기는 일이 재미없다.”고 까지 말하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속에 건강할 때에도 감사하고, 병들었을 때에도 감사하는, 그런 어떤 처지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문제풀기의 바탕이 그 마음속에 가득 번져 오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지금 일주일째 감기 기운을 갖고 마음이 무겁게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얼마나 감사드릴 것들이 많은지 모릅니다. 아내의 정성스런 사랑을 받는 기회가 되었기 때문이고, 연약한 이웃들을 위해서 같은 마음으로 기도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중요한 깨달음은 어떤 처지 형편에서도 자족할 수 있었다던 바울 사도를 배우는 일입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에게 이런 큰 축복이 함께 하시길 기도 드립니다.
5. 내일 임구원목사님께서 귀국하실 예정입니다. 편안하고 즐거운 여정이 되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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