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724호.
시편 시 85:10-13.
찬송 521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늘을 나는 독수리는 새끼들에게 멀리 바라보는 훈련부터 시킨다고 하지요. 가끔은 우리도 멀리 시선을 두고 실패나 성공에 대한 생각을 곰곰이 해 보는 시간이 필요할 겁니다. 시선을 가깝게 두면 오늘만 보이지만 멀리 보면 한 달 일 년 그 뒤의 내 모습도 보이겠지요. 오늘도 멀리 시선을 두시고 하루를 힘차게 출발해 보시기 바랍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07년 7월 6일 방송>
2. 오늘은 성령강림절 후 다섯째 주일로, 눅 10:25-37의 말씀을 본문으로 “우리가 도울 이웃은 누구인가?” 라는 제목으로 설교하려고 합니다. 인간은 혼자서 살수 없는 사회적 존재라는 측면에서 안정감과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지만, 동시에 저마다의 독특한 욕망으로 인해서 충돌하고 갈등할 수밖에 없다 하겠습니다. 우리가 관심할 이웃은 누구입니까?
율법의 중심주제에 대해서 의문을 품고 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25-29절).
충실한 율법사로서 율법의 주제를 모를 리가 없을 것입니다. 곧 마음과 목숨과 힘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이를 율법과 선지자의 대 강령이라고 규정하셨습니다(마 22:34-40). 그런데 이 사람은 이 말씀에 대해서 항상 의문을 품고 있었습니다. 우리들 인간이 사랑해야 할 두 대상 하나님과 인간이 있는데, 하나님은 유일무이한 창조주요 섭리자인 절대자라고 어릴 때부터 배워왔으니 어느 정도 알 것 같은데, 이웃이란 누구인가 하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우리는 우리들 이웃에 대해서 어떻게 알고 있으며, 또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요? 가령 우리나라에서는 다음과 같이 이웃을 분류하곤 합니다. 첫째는 혈연(血緣)관계, 둘째는 지연(地緣)관계, 셋째는 학연(學緣)관계가 그것입니다. 그밖에도 이해관계에 의해서, 또는 신앙적 관계 혹은 이념적 관계로 이웃을 생각합니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통해서 가르치신 이웃이 있습니다(30-36절).
선한 사마리아 사람 비유는 유대인들의 입장에서는 매우 불편한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이 가장 미워하는 사마리아인을 이웃으로 말해야 했으니, 매우 부끄럽고 치욕적인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죽음 직전의 유대인을 도운 것은 레위인도 제사장도 아니라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비유는 사마리아인이 일반적으로 선한 성품을 가졌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주님은 강도만나 죽게 된 사람 앞에 사마리아 사람을 등장시킨 것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불가능한 가능성에 눈을 뜨게 하시려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미움과 천시를 받아오던 사람이 복수자가 아니라 오히려 원수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등장시킨 때문입니다. 사마리아 사람이 보여준 교훈은 팔을 안으로 굽히는 삶이 아니라, 팔을 밖으로 뻗는 삶, 곧 나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이웃이 아니라,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며 그에게 다가가는 일이었습니다.
진리를 아는 것만이 아니라 실천하는 삶이 올바른 신앙입니다(37절).
진리를 이해하고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신앙의 기초석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거기서 머물러 있으면 위선에 불과합니다. 참된 신앙이란 믿는 내용을 이해할 뿐 아니라, 삶에서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라고 묻는 율법사에게 “너도 그렇게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율법사만큼 율법의 정신과 의미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행동하는 신앙이 아니었음을 주님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예수 서울에 오시다>란 대학 가장행렬 촌극에 예수 역을 맡았던 저는, 김포공항에 몰려온 한국의 기독교지도자들을 향해 “한국 교회를 보고 싶다.” 했지만, 그들은 한 마음 한 행동으로 예수역을 연기하는 저를 비행기에 던져 넣고 말았습니다. 달콤하고 화려한 말잔치로 끝나는 지도자들의 설교가 한국 사회에 아무런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는 어두운 현실을 비판한 것입니다. 갈릴리를 중심무대로 공생애를 사셨던 주님에게서 아무 것도 배우지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3. 묵상식구 김효종 목사님은 한국 교회 청소년들을 인솔해서 미국 루터교 연합 여름 캠프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유익한 시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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