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357(2024. 4. 3. 수요일).

시편 시 56:1-3.

찬송 239.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악당 브루터스를 한방에 날려버리던 정의의 사나이 뽀빠이 기억하시지요? 여주인공 올리브가 뽀빠이, 살려줘요.” 이렇게 외칠 때마다 변함없이 시금치 통조림 먹고 달려오던 그 뽀빠이가, 어느 새 여든을 넘겼다고 하더군요. 미국의 한 신문 만화로 처음 실렸던 게 1929, 80년이라는 시간이 벌써 흘렀군요. 어린 시절에 뽀빠이를 보고 자란 분들은 다 아실 거예요. 뽀빠이는 악당 부르터스보다 덩치가 훨씬 작았고요, 연인인 올리브보다도 키가 작은 남자였지요. 하지만 무척 강하고 늘 유쾌한 사람이었습니다. 요즘 우린 큰 키에 작은 얼굴을 유난히 선호하는 편이지만, 전문가들은 이렇게 충고하고 있기도 하지요. 키가 작으면 균형 감각이 뛰어날 뿐 아니라, 지능지수도 높고 장수할 확률도 더 높다고요. 토마스 사마라스라는 미국의 학자도 그렇게 얘기하고 있던데요. 여든을 넘은 나이지만 어디선가 여전히 두툼한 팔뚝을 자랑하고 잇을 뽀빠이 아저씨 모습을 떠올리면, 한주에 쌓인 피로도 슬쩍 물러서 버린 것 같습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0943일 방송>

 

2. “우리의 부활2(29-34)”을 읽었습니다. 유교에서는 인간을 학생이라고 얘기하곤 합니다. 그래서 묘비명 전면(前面)에는 대체로 학생 박공 아무개 지묘라고 새기곤 합니다. 인간은 평생을 배우며 살아야 하는 존재라는 뜻일 것입니다. 이런 이해는 기독교 신앙을 배우고 훈련하는데 있어서도 많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공지영의 산문집 [너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는 성지순례기라고 말해도 좋을 우리 크리스천에게는 유익한 읽거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년 초에 구입해서 완독하였는데, 성경만 알고 있는 제게는 성경의 배경을 폭넓게 이해할 수 있도록, 역사적인 일화들을 채울 수 있다는 점에서 즐겁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오늘 본문에는 고린도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낯선 일들을 소개하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흥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29절에 보면, “죽은 이들을 대신해서 세례를 받는 사람들은 왜 그런 일을 하는 것입니까?” 하고 묻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초대 교회 시절에는 영유아가 일찍 죽거나, 아직 세례를 받지 못하고 죽은 가족들이 있을 때, 가족 중 누군가가 그 망자를 위해서 대신 세례를 받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세례를 받지 못하고 별세하는 가족의 미래에 대해서 많이 걱정할 것입니다. 서울로 목회지를 옮기고 얼마 되지 않을 즈음에 외출에서 집에 돌아오니 아내가 왜 이렇게 늦게 왔느냐고 나무랐습니다. 부산에서 제가 목회할 때 가끔 손자를 업고 교회로 마실을 왔던 할머니 한 분이 계셨는데, 그 분이 서울로 이사한 아들 집에 와 계셨는데, 임종하는 것 같아서 제게 연락을 했던 모양입니다. 제게 세례를 받도록 가족들이 원했다고 말입니다. 두어 번 전화를 했다가 그냥 포기하고 병원으로 옮기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뒤로는 신학교에서 장례예배를 가르칠 때는 반드시 그런 비상시에는 목회자가 없다면 집사 등 평신도 직분자도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줄 수 있다 가르쳤습니다.

    대신 세례를 받아주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요즘은 목사를 대신해서 아무나 결혼식 주례를 해도 무방한 것으로 생각하는 일들이 생겨서 걱정을 합니다만, 서양에서는 결혼 증명서를 위해서 결혼식 주례자는 법률로 정하고 있습니다. 주례자격을 가진 목사나 시장이 주례를 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렇게 하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결혼의 법적 효력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우리는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가 무서운 질병이나 전쟁으로 세상을 떠나갈 때, 많은 질문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 아이가 하나님 품에 안길 수 있을까 하는 등의 물음말입니다. 그래서 유아세례를 받도록 하였는데, 그렇지 못할 때 슬픔은 배가 되었을 것입니다. 사도는 대신 세례 받는 것을 무방한 듯 선처해 주거나 무마하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대신 세례를 받는 것처럼 억지로 세례를 받는 일을 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면서, 왜 그렇게 하는지 그 심리적인 현상을 통해서 세례의 가치와 세례의 축복을 말해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유아세례를 인정하지 않는 교파에서는 자신의 신앙을 충분히 이해하고 고백하는 경우에만 세례를 줄 수 있다하여 성인세례만을 고집하는데, 이 또한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 모릅니다. 세례와 성찬을 받는 것, 말씀을 듣고 아멘하며 응답하는 것, 모두가 성령님의 도우심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사후의 모든 문제들, 구원의 여부와 천국에 이르렀는지 등은 주님의 은총에 맡기면 됩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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