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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4.04.09 거룩한 생활. / 벧전 1:13-25.

묵상자료 8363(2024. 4. 9. 화요일).

시편 시 57:4-5.

찬송 358.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혹시 뒷센 스마일, 뒷센 미소라는 말 들어보셨어요?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의 폴 에크만 교수는, 사람의 웃는 표정 얼굴 표현에 대한 연구로 유명한 학자입니다. 그 연구에서 에크만 교수는 사람들의 미소를 열여덟 개 서로 다른 유형으로 분류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열여덟 개 중에서, 오직 단 하나의 미소만이 완벽하게 순수한 즐거움이나 재미를 표현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했지요. 그 미소에 19세기 프랑스 해부학자 이름을 따서 붙여진 이름이, 바로 뒤센 스마일 뒷센 표정 이예요. 그러니까 뒷센 미소 뒷센 표정이라고 하면, 완벽하게 순수하고 또 기뻤을 때 재미있어 할 때, 저절로 짓게 되는 미소를 뜻하는 것이지요. 그런 뒷센 미소의 형태는 눈 주위의 근육이 수축되면서, 눈 바깥쪽으로 살짝 주름이 잡히는 형태라고요. 흔히 눈웃음친다고 할 때의 표정과 비슷하답니다. 사실 눈 주위 근육 둘레 근육은 어떤 경우에도 잘 달라지지 않는 근육이래요. 오직 단 한 가지 경우에만, 그러니까 즐거움이나 기쁨을 주체하지 못해서 저절로 웃을 때만, 그렇게 움직여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심리학자들은 뒷센 미소의 빈도로 진짜 기뻐하는 건지 그저 기뻐하는 척 하는 건지, 행복감과 만족감을 보다 정확한 지수를 밝히기도 하지요. 행동 심리학자들은 그 점을 아예 거꾸로 활용하기도 해요. 가령 억지로 뒷센 미소를 짓게 노력해서, 눈 둘레 근육을 인위적으로 움직이게 하고요. 그 덕분에 마음이나 기분이 기뻐지도록 바꾸는 거지요. 그러니 내 얼굴 어디엔가 숨어 있는 뒷센 표정을 찾아내고 만들어 보고 따라해 보는 것, 억지로라도 뒷센 미소를 자꾸 지어보는 것, 행복해 질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일 텐데요. 그러기 위해선 물론 내가 언제 어떻게 정말 사심 없이 순수하게 웃고 미소 지었는지, 그 상황을 잘 기억해 보는 것도 물론 중요할 것 같습니다<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048일 방송>

 

2. “거룩한 생활(13-25)”을 읽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민족 이스라엘, 하나님께 불려나온 사람들 크리스천, 여러분들은 이런 사람들을 거룩한 사람이라고 주저 없이 말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 명령하셨는데, 빛과 소금은 고사하고, 세상에 악취를 풍기고 해악을 끼치는 집단이 된다면 이는 매우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제(8) 국민일보는 지난 3일 오전 수도권 지하철 1호선에서 전도활동 불편 민원이 접수돼 열차출발이 지연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열차 안에서 전도 활동하는 분은 얼른 내리라는 방송이 나온 뒤에도 피민원인이 하차하지 않자 기관사는 내리지 않으면 출발하지 않겠다고 대응했습니다.” 란 기사를 올렸습니다. 노방전도자가 출근길의 시민들의 발을 멈추게 했다는 내용입니다. 그 열차 안에는 전도할 대상자라고 생각한 불신자는 물론 전도 대상자가 아닌 크리스천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 전도자는 우리가 흔하게 만날 수 있는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란 피켓을 들었습니다. 이런 분들을 만날 때는 크리스천들 까지도 불쾌할 뿐 아니라 반감까지 갖는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거룩한 생활을 권고하는 사도의 설교입니다. 거룩한 사람이 되고, 거룩한 행실을 보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전적 의미는 성스럽고 위대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헬라어 사전에서는 순수하고 완전하다.”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제가 가장 좋아하는 거룩에 대한 해석은 구별되다. 두려워하다.”는 의미입니다. 구약의 나실인이 거룩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세상 사람들과는 확연하게 구별된 그 무엇을 보여주었습니다. 나실인으로 서원을 할 때, 독주를 마시지 않고,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으며, 사체(死體)를 만지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6:1-8).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거룩한 생활이란 나그네로 살아가는 것이라 비유하고 있습니다. 나그네의 생활은 두려움의 연속이라고 했습니다. 낯선 이방인으로 주목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 한마디 행동 한 거지가 온 마을을 들썩이게 만들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제가 독일의 한 시골 마을에 있는 신학교에서 3개월간 세미나에 참석한 일이 있었습니다. 오후 5시면 음식점을 제외하고는 모든 가게가 문을 닫아서 학교 도서관이외에는 갈만한 곳이 없었는데, 마침 그곳에 큰 교회당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당을 둘러보고 나오는데, 한 어린 사내아이가 지나가고 있어서 그 아이를 불러 얘기를 나누려고 했는데, 한 아주머니가 소리를 지르며 뛰어나오는 것입니다. 왜 아이를 부르느냐면서 제게 따지듯 소리쳤습니다. 그래서 이곳 신학교에서 열리는 국제 세미나에 참석하는 한국에서 온 목사라고 자신을 소개하자, 그 아주머니는 그 교회의 사모라며 오해가 풀렸던 추억이 있습니다. 그때 나그네인 자신을 십이분 깨닫는 기회였습니다. 두려움으로 살 나그네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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