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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4.04.22 잠재적인 크리스천이 아직도 30%나 있습니다. / 골 3:18-4:6. 1

묵상자료 8376(2024. 4. 22. 월요일).

시편 시 59:12-13.

찬송 16.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제 주위에 요즘 글씨 학원에 다니는 분이 있습니다. 학창시절에 손 글씨를 아주 예쁘게 잘 써서 칠판글씨 같은 것을 도맡아 쓰다시피 했지요. 그런데 잡지사에 다니면서 취재 때마다 급히 받아 적다 보니 글씨가 엉망이 됐답니다. 그런데 컴퓨터자판 시대에 무슨 대수랴 했는데, 갑자기 학창시절처럼 예쁜 글씨의 다이어리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너무나 절실했다고요. 또 영화포스터 같은 곳에 제목 글씨를 쓰는 켈리그래피 일에도 관심이 갔답니다. 그래서 결국 글씨학원에까지 등록을 했지요. 얼마 전에는 마침내 옛날의 손 글씨를 되찾았다며 증거의 엽서까지 보내 주었어요. 이런 글씨를 가진 사람은 평소 마음도 일상도 이렇게 산뜻하고 깔끔하지 않을까 싶었던 바로 그런 글씨체로요. 실제로 심리분석가들은 글씨도 한 사람의 성격이나 심리상태에 깊은 연관성이 있다고 하지요. 간단한 예로, 글씨체가 동글동글한 사람은 성격도 원만하지만, 다소 권위의식이 있고, 네모반듯한 글씨를 쓰는 사람은 조용하면서 무뚝뚝한 성격인데, 글씨가 작으면 소심하고 다소 신경질적일 수도 있지요. 또 영어필기체를 쓰듯이 날려쓰는 사람은 글씨 그대로, 간섭을 싫어하는 자유로운 성격의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그런 연관성 때문에 범죄수사 같은 데선, 필적감정으로 용의자의 심리상태나 당시 상황을 추측해 내기도 하는데요. 이젠 컴퓨터의 키보드 시대라 손 글씨 쓸 일이 훨씬 줄어들긴 했지요. 그래도 친구 엽서를 보니까 덩달아 기분도 깔끔해지고 산뜻해 지는 게, 수능 논술 고사같이 손 글씨가 들어가는 시험에선, 시험관의 채점 심리에도 아주 작게나마 영향을 좀 미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0426일 방송>

 

2. “새 생활의 인간관계(3:18-4:6)”을 읽었습니다. 크리스천의 인간관계라고 표제어를 바꾸어도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말씀은 크리스천 이전의 인간관계란 정 반대로 이해하면 되겠다는 내용입니다. 제가 처음 부산에서 개척교회를 시작할 때, 목표를 어린이와 노인에게 전도 대상을 삼고, 어린이는 어린이 집을 세워서 그 가정과 연결을 시도하는 것이었는데 비교적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런데 노인을 설득하는 작업이 생각과는 완전 달랐습니다. 황혼기를 보내는 노인들이 담배 연기 자욱한 노인 회관에 틀어박혀서 하릴없이 따분하게 지내는 환경에서 좀 더 의미 있는 활동을 하자고 노인회 임원들을 설득하였는데 회장님은 일본 유학을 하신 분으로 제 의견에 거의 동감하시고, 저를 기특하다고 칭찬까지 하였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실패한 전도였습니다. 그러나 사탕이나 우유를 사들고 들어갔던 것은 결코 손해만 본 것은 아니었습니다. 1976년도였으니까 유신이 시퍼렇게 살아있던 시절이었는데, 노인 회장은 제게 신문 읽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거꾸로 읽으면 딱 맞는 말이라고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 적용시키면 재미있겠다 싶습니다. 첫째는 1세기의 유대 사회는 여자가 드세서인지는 몰라도 남편을 우습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는 남편에게 순종하라는 말을 크리스천의 중요한 덕목으로 제시한 것입니다. 둘째는 자녀들이 자신들의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는 망나니들이었습니다. 세 번째로 남의 수하에서 종으로 살고 있는 사람은 자기 주인에게 불복하는 일들이 잦았습니다. 넷째로 주인들은 자기 종들을 부당하고 불공평하게 대우하였습니다. 다섯째로 기도에 게으르고 불평하는 크리스천들이 아주 많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권/女權이 신장해서 자기 부인에게 꼼짝달싹하지 못하는 서구사회는 우리라고 예외가 아닙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부모의 가르침이나 꾸중을 듣기 싫어하는 것만이 아니라 오히려 시대에 뒤떨어진 꼴통이라고 되레 항의합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민주사회는 주인과 종이 직능이라는 점에서까지 똑같은 의견을 갖는 줄 알고 자기 직원의 눈치를 보는 중이라고 얘기들 합니다. 기업가들에게도 문제가 심각합니다. 자기 사원들을 함부로 불편부당하게 관리하는 불합리성이 노출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마지막으로 시대 조류/潮流라는 핑계를 대면서 기도에 게으르게 살면서도 부끄러움이 전혀 없다는 것이 낭패입니다. 이런 얘기는 미국 현역 목회자가 핏대를 올려가며 제게 성토한 얘기들과 같았습니다. 한편에서는 목회자들이 배가 부르고 여흥거리가 늘어나면서 목회에 대한 진정성도, 설교에서의 감동도, 실천하지도 않는 자기변명이나 빈말만 늘어놓는 삯군의 목자로 변신한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목회자가 소생해야 교회도 소생할 것입니다. 우리 교우들이 자신의 목회자를 위해서 가슴을 치고 눈물을 흘려야 할 때입니다. 30%에 가까운 국회의원에, 50%에 육박하는 의사에, 전체 국민의 30%가 크리스천인 우리나라가 어떻게 절망을 성급히 논한단 말입니까?

 

3. 내일부터는 KBS FM1 의 이야기가 책 소개로 바뀌겠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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