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교회학교를 위해서 기도하는 주일입니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신앙으로 양육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들은 우리의 미래인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 가운데서 자라게 될 때, 세상을 빛내는 값진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젊은 엘리사를 통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배우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젊은이를 주님의 말씀으로 가르쳐야 합니다(잠22:6). 저는 매일 책과 함께 살아갑니다. 그러나 깨달음은 많은데 기억력이 떨어져 보존하는데 한계를 느낍니다. 지금 제가 외울 수 있는 성경구절들은 아마도 주일학교 시절에 암송했던 것들이 전부입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성경말씀들은 대부분 학생시절에 배웠던 내용들입니다. 조기 교육의 열풍이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나이에 알맞은 교육이 필요하다는 점을 외면한 때문입니다. 유아기는 영어나 글자 읽히기 보다는 감성이 풍부하게 자라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유년기에는 생각의 바탕을 든든하게 놓아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학생시절에는 위대한 삶을 내다보도록 마음의 눈을 띄워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대학시절에는 진리를 찾아서 밤을 새며 공부해야 합니다. 감성이 눈을 떠야 할 나이에 억지로 영어다 수학이다 하면서 가르치는 것이 과연 잘 하는 것일까요? 가치관을 세우기도 전인 아이에게 명품에 눈뜨게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부모의 자리는 하나님이 세우신 최고의 스승의 자리(잠1:8)인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녀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부지런히 주의 교양과 훈계를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야 늙어도 그 길을 떠나지 않고 똑바로 제 길을 걸을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복된 삶으로 인도하십니다(왕상8:35-36). 어떤 사람은 멋진 삶을 살고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어리석게 사는 것을 봅니다. 우리는 이 두 사람을 평가할 때마다 각자의 결심과 행동에 주목합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초점을 그들 인간 안에서 찾으려고 한다는 점입니다. 오늘 본문은 청년 엘리사가 어떻게 엘리야의 제자로 부름 받는 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12겨리 소가 끌는 장기 질을 했다니까, 24마리 소를 부리는 힘센 장정이었습니다. 그가 성공한 삶을 살고 있었지만, 엘리야의 부름을 받았을 때, 주저하지 않고 따랐고 마침내 위대한 선지자의 반열에 서게 되었습니다. 엘리사의 결단과 행동에서 그의 위인 됨을 찾을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엘리사를 포함해서 우리 모든 인간의 가치는 하나님 안에서만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엘리사의 마음을 사로잡은 하나님의 은총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항상 겉으로 나타난 현상에만 주목하지만, 사실은 그 현상 뒤에 있는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손에 쥔 복만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 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야 합니다. 지금 많은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뜻 보다는 자신의 목적이 너무 강합니다. 자기 뜻을 이루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는 것은 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헌신의 삶을 눈뜨게 해 주어야 합니다(왕상19:21). 안정된 현실을 박차고 일어나서 고난이 기다리는 새로운 삶에 도전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그랬고, 기드온이 그랬으며, 바울이 그랬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뜻과 그 나라를 위해서 헌신의 삶을 살려고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엘리사는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엄청난 도전에 몸을 던질 수 있었을까요? 엘리사의 사람됨 때문일까요? 저는 하나님께서 여러 도구들을 사용하시지만, 궁극적으로 하나님 자신이 그렇게 사람들을 사로잡아 주신다고 믿습니다. 엘리야는 그 일에 불린 도구였을 뿐이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기독교인 부모로서 혹은 교사로서, 우리의 자녀들에게 하나님께 헌신하는 삶을 살도록 눈을 열어줄 책임을 부여받았습니다(엡6:4). 모든 인간은 그가 하는 일이 무엇이든지 간에 하나님께 헌신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인간이 사는 목적이며 삶의 의미인 때문입니다. 요사이 진정한 삶의 목적에 대해서 질문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헌신하는 삶이란 자신의 현재의 일을 하나님의 일로 함 입니다. 무엇이 잘 사는 것입니까? 젊은 엘리사가 고민했을 문제입니다. 그는 엘리야를 보면서 그를 따르는 일로 뜻을 정했습니다. 하나님께 헌신하는 삶보다 더 귀하고 아름다운 삶이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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